2018년, 대학을 가기 위해서. 울산을 떠났을 때 고등학생 때부터도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별로 혼자 지내는 것에 그렇게 우울하고 외롭지 않았고, 연애도 시각하고 동아리 활동도 해서 외로움이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다른 감정 같은데... 상경한 사람은 다 느낄 텐데 아파서 동아리 MT도 못 가고 룸메이트도 없었고 방안에서 감기약 먹고 누웠는데 서러웠다.
우리끼리는 추억이 없지.
너무한 거 아냐?
팩트지! 왜냐하면 고등학생은 기숙사에서 보냈지, 내가 휴학할 땐 너가 알바를 다녔고 방도 멀었지. 관심사도 달랐고? 그래도 기억에 남는 건 네가 알바비로 연어초밥을 사준 것이다.
미친 거 아니야?
그리고 휴학 기간에 집에서 일났던 거로 마음 고생하고 옥상 가서 울었었지… 그 정도입니다.
어연 1년이네… 나는 소음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기억에 남는다. 윗집 TV 소리도 들리고 노래도 못 부르면서 참 크게 부른다.
나랑 싸운 기억일 줄 알았는데?
같이 싸우면 부딪힐 수밖에 없지. 외집단을 향한 분노가 유지되기 때문에 너와 나의 결속력이 올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회복 탄력성이 좋아서 뒤끝으로 오래 남기지 않고 흑역사로 가볍게 전환된다.
나만 맘고생 하고 있었단 거야?!
너의 잘못보다 나의 흑역사. 나는 싸운 것을 마음에 크게 두지 않았다.
10점!
이것도 너무 의외인데?
환경 문제가 감점 요소일 텐데, 그 환경 요소를 상회할 만큼 서울의 인프라가 좋고 서울 반경으로 그것이 더 뻗어나가니 만점. 어차피 나는 고등학교 인맥도 다 서울에 있다.
남자친구와 나의 중간 거리가 부평이라 그곳에서 많이 본다. 영화관이 기억이 많은 공간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용산에서 2DX 아이맥스로 볼 때, 진동, 떨림 등 그것들이 돈 주고 볼 맛이 나더라. 그런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 최근 존윅을 볼 땐 음향의 압도감이 유튜브와 전혀 다르니까. 그래서 영화관의 평가치가 올라갔고, 울산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울산 아이맥스 크기로 4위일 걸?
울산이 설령 그렇대도 1위와 차원이 다르다. 또 충격적인 경험은, 부평 롯데시네마가 시설이 좋지 못하다고 불평했는데 남자친구가 “울산에는 이런 동네 영화관이 없니?”라고 했다. “동네 영화관”이라니!!
생각도 못 해봤는데...
서울과 인천은 동네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있으니 그곳을 동네 영화관이라고 부르더라… 이런 문화시설 자체가 참 다르지 않나? 서울에는 올리브영 있는 만큼 영화관이 있다. 아니, 올리브영과 배스킨 라빈스가 블록마다 있는 것도 참 기가 막히다.
너한테 가끔 얘기하는 성수 핫플레이스는 가끔 가는 게 전부다. 친구들 만날 때는 도산, 청담 쪽에서 미술관을 다녀오거나 한다. 애인과는 편한 장소를, 친구와는 핫플레이스를 간다.
울산에선?
울산은 삼산과 성남 둘 중 하나밖에 없었지.중학생 때까지 성남, 그 이후는 전부 삼산인데 업스퀘어 앞에서 만나는 것이 “국룰”이다.
네가 “홍대생”이니 공연을 많이 보겠다고 짐작을 안 하진 않았다. 그리고 인디 밴드는 공연을 많이 하니까 당연히 많이 보겠다 생각을 했었고…펜타포트를 다녀온 줄은 몰랐다. 우리가 이래서 자매 사이가 나쁘다!!!
이건 아니라고 할 수가 없네.
서로 얘기 안 하고 맛있는 것만 가끔 사 먹지. 말한 김에 네가 간식 좀 자주 사오면 좋겠다. 네가 먹는 걸 안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난 잘 먹으니 좀 자주 사와주겠니? 그때 사온 "에키노마에” 야끼소바 빵 굉장히 유명한 거였단 말이야.
0점.
?!
네 인생은 남 인생이다. 각자의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끼리도 무보증 보험 관계이다.
냉정하긴…
그래서 별로 남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지가 않다. 대신, “너”라는 특정성을 지우고 미대생, 공연광, 집순이 같은 성질만 따온다면 재미있어 보인다. 특히 미대생.
뭐 하고 싶은데?
미대생이라면 재미있는 유적 창조를 하겠지? 나는 회화과에 가고 싶었고, 작가보다 화풍으로 인상파를 좋아한다. 현대미술은 관념미술로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미술이 아니라서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AI나 메타버스를 다룬 전시들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기술과 예술이 접목된 형태가 재미있었다.
첫째, 텀블러 설거지는 직접 해라.
인정합니다.
둘째, 네가 쓴 컵도 네가 해라.
셋째, 그제 다 먹은 시리얼 통도 하고.
넷째, 네가 사둔 계란 한 판 좀 나눠먹어도 되니?
당연히 되지!
그럼 끝이야.
그때 취업을 했다면 혼자 살고 있겠고, 결혼을 했다면 그 사람이랑 살겠지? 나는 결혼이 하고 싶다. 원가정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행복한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다. 또,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나는 원래 옛날 사람 같아서 아픈 것은 둘째 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느낌이 궁금하다.
현재 집 계약이 6년까지 연장 가능한데 나는 미래 계획에 없는 것인가?!
여기는 통근이 문제다. 서울에선 항상 문제일 것이다. 지하철 내 호흡곤란을 다룬 특집 기사를 관심 깊게 보았었다.
그런데도 집에 안 돌아가고 싶어하다니,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이다.
서울공화국을 포기할 수 없다. 부모부터 서울 사람인 “찐서울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결국 다 마이크로 난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이념 제하고 결국 살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니 최종으로 어떤 “먹고사니즘”에 갇힌 소시민, 난민이 맞다.
될 수 있겠지? 결혼해서 정착해야 가족에 대한 책임을 바탕으로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청약과 물가 문제는 견뎌야 할 문제고. 울산에 돌아간다면 원가정 문제 때문에 더 숨 막힐 것 같다.
본가 말고 새로운 집을 울산에서 구한다면?
그 경우라면 성안동에서 살 것이다. 구민 운동장 가는 길을 정말 좋아한다. 해지기 전 골든 타임에 걸으면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드는 풍경이 좋고 사람 소리가 들린다. 그 풍경, 시간, 나뭇잎 향을 좋아해 서울에서 그것을 못 찾는 게 아쉽다.
그러니까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럼에도, 인간관계와 맛있는 것과 문화가 다 서울에 있기 때문에 나는 최종적으로 서울을 택하겠다. 인간 관계가 좁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